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평론가) - “정종미의 오색산수” 오색산수 전 서평 2000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평론가) 정종미의 작품이 갖는 독자성은 먼저 재질의 선택에서 기인한다. 굳이 분류한다면 그의 방법은 동양화 중 채색화의 영역에 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고 있는 채색의 선택과 방법은 일반적인 채색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발명에 의한 채색이나 사용법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우리의 고유한 채색방법을 재현해 내고 그것을 현대적 감성에 상응되게 구현해 내고 있음이다. 그의 작업은 먼저 소지의 선택에서 그 독자의 영역을 확보해 간다. 그림이 얹히게 되는 바탕 -소지- 은 작가가 어떤 식으로 작업을 전개시킬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유도해 낸다. 그가 선택하고 있는 소지는 장지이다. 장지의 선택이 이미 90년대 초부터이나 그것이 더욱 구체적인 재료로서의 중요성을 간파하게 된 것은 그의 회고에 의하면 93년 2년 간의 미국체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본다. “93년 이후 2년 동안의 미국체류 기간 동안 그곳에서의 문화적 충격과 학업은 그림에 대한 나의 사고와 창작의지에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2회전에서 싹트기 시작한 재료에 대한 관심은 미국행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것이 되었다.” 막연했던 재료에 대한 인식이 더욱 확고해짐으로써 그의 작업은 비로소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갈 수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장지는 전통적인 회화의 소지로서 널리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구의 제작에도 사용되었다. 근세에 오면서 양지가 보편화되고 전통적인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장지의 사용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른 장지 생산기술도 낙후 현상을 막을 수 없었다. 현대화에 따른 고유한 재료와 방법의 퇴색은 전 영역에 걸친 것이지만 특히 회화 분야에서의 그 피폐는 가장 심각한 국면에 이른 느낌이다. 모필과 수묵의 사용은 물론이려니와 고유한 채색재료와 그 사용방법은 이미 많은 한국화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인상이다. 굳이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고유한 방법과 정서를 팽개치면서까지 서양적인 방법에 급급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내버리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정종미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각별한 데가 있다. 그의 장지의 선택은 가장 기본적인 질료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림을 얹는 소지로서 머물지 않고 매재로서의 특수성을 개발해 가는데 그의 독자적인 방법의 전개가 엿보인다. 장지를 다듬이 위에서 두드려 더욱 부드럽게 한 후 담채의 수간 안료와 아교를 수없이 반복해서 발라 올린 후 다시 콩즙을 메겨 투명한 두께를 만드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 위에 다시 채색을 가하고 또 콩즙을 발라 뉘앙스를 낸다. 이 같은 방법은 일정치 않고 다양한 변주를 통해 주어진 상황과 내용에 대응시켜 간다. 이 같은 작업은 단순 노동을 넘어 오랜 연마와 회의를 거듭해 가는 인고의 과정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먼저 다듬이 위에서 도침을 하고 담채의 수간 안료를 아교와 수없이 바르기, 콩을 여러날 불려 갈아서 콩즙을 짠 후 수없이 올리고 닦고 지우고 훔쳐내기. 그런 후에 다시 붙이고 뜯어내기. 그 과정에서 나의 의도를 멀찍이 벗어난 것들을 버리고 체념하고 용납하기. 손바닥에 물집히 잡히고 무너질 듯한 어깨. 손가락 마디가 달라지는 듯한 고된 노동 속에서 가끔 몰려오는 회의......” 그의 작업이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치는가를 엿보게 하며 그러한 작업이 얼마만한 인내를 요구하는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장지를 순화시키고 이 위에 다양한 채색방법을 강구해 가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말하고 있듯 고된 노동과 잇따르는 회의는 이 오랜 과정을 통해 반복되는 것이어서 그의 작업이 얼마나 인고의 연속인가를 엿보게 한다. 그의 채색 기법은 염색으로 바탕을 조성하고 이 위에 안료를 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염색은 스며들고 채색은 화면 위에 얹히는 것이 된다. 염료는 천연염료를 사용하고 안료는 수간채와 석채를 사용하는데 석채도 천연과 인공으로 나눌 수 있다. 천연의 염료란 오래전 우리 조상들에 의해 채취된 것들로 이를 재생해내고 있다. 예컨대 제주도의 땡감을 따와서 그 생즙을 내어 종이에 염색하는 식이다. 장지기법에서의 안료는 혼색을 해서 사용해서는 안되고 색을 한층 쌓아올리리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독특한 깊이가 우러나오게 되며 풍부한 뉘앙스가 획득된다. “은은히 품은 빛, 숨결같이 고른 표피, 체온을 받아주는 포근함”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과 그 결과는 매재를 단순한 매재로 머물게 하지 않고 매재 자체가 곧 회화 그것이 되게 하고 있다. 매재라는 물성 자체가 회화로 대용되고 있는 독특한 경지를 보이는 것이다. 장지의 선택에서부터 채색을 가하는 일정한 과정을 통하는 가운데 어느덧 매재는 매개적인 존재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회화가 되는 특이한 국면에 이르게 된다. 매재이면서 동시에 회화 자체인 경지에 도달된 것이다. 종이와 색료의 물질성을 걸러내고 중화의 단계에 들어선 경지이기도 한 이 연금술에서야말로 정종미의 독자한 조형세계의 내역이 파악되어진다. 그의 근작은 이 기본적인 과정을 거친 작업들로 때로는 색면에 의한 추상적 화면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부분적으로 천이나 또 다른 종이를 꼬라쥬하여 공간감을 형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첨가하기도 한다. 이전의 여인상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의 서술보다 주로 색면에 의한 투명한 공간감을 추구하는 경향에로 경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조 안견에 의해 그려졌던 <몽유도원도>의 이미지는 변주된 형식으로 그의 많은 작품의 명제로 떠오른다. <몽유황색도>, <몽유고서도>, <몽유녹색도> 등이 그런 유형이다. 물론 작가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깊은 감화를 받았던 체험의 유산일 수도 있겠으나 오랜 세월을 격한 저쪽에로 향하는 회귀의식의 극히 자연스론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혜원의 미인도가 좋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보다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 벽화가 훨씬 아름답다”고. 그가 왜 몽유도원도를 고집하고 있는가를 알 듯하다. 그가 추구해마지 않는 방법도 그렇거니와 회화에 대한 근원적인 의식도 우리의 고유성에 대한 애착에 가 닿아있음을 엿보게 한다. 그러기에 경주 남산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내고 다산이 걸었던 오르막길에서도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의 그림은 단순한 한 폭의 그림으로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다시 환기해 주는 매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오랜 인고의 과정에서 빚어진 예지와 투명한 의식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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