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평론가) - “전통회화의 신선한 방법 개척한 ‘종이 부인’” 월간 Art Focus 1999. 11

정종미의 작품은 우선 독자적인 방법과 이미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기존의 동양화에서 엿볼 수 없는 다양한 재료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종이가 매재이긴 하지만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라는 점, 즉 바탕으로서의 종이가 아니라 이미지를 구현하는 직접적인 매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종이 위에 구사된 그림이 아니라 종이 자체가 조형성의 내역을 이룬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가 동원하고 있는 종이는 수제종이에 들기름, 감물, 지료등 천연적 안료가 가미되어 단순한 종이가 아닌 조형화의 단계를 자체 내에 구현시키고 있다. 특히 그가 구사하고 있는 방법은 재래적인 물감 들이기와 천연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온갖 화학적인 재료와는 다른 독특한 수단과 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향수 같은 아련한 정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최근 들어 종이를 조형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한지의 개발과 그것의 적극적인 원용은 독자적인 매제의 발견과 정서의 환기라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단순히 재래적 방법에 의해 제조된 한지를 지지체로서 사용하는 수준에서 한걸음 나아가 한지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미 다양한 실험들이 전개되고 있는 추세다. 종이가 이루어지기 전의 원액으로서의 닥을 직접적으로 조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지가 만들어지는 공정자체가 조형의 관심으로까지 확대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정종미의 경우는 수제종이가 근간이 되고 여기에 갖가지 천연재 안료를 가미함으로써 종이의 물성과 그 발효의 독특한 효과를 조형적인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예다. 아마도 이같은 공정은 한지를 주매재로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작가와는 구별되는 그만의 개발 영역이라고 하겠다. 종이를 매재로 사용하는 조형작가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 종이와의 관계는 각별한 데가 있다. 현대에 와선 생활공간이 크게 변모되었지만 가까운 과거만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우리의 생활공간은 온통 종이로 에워싸였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장판지와 창호지문은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매개라 할 수 있다. 이속에서 생활해온 터에 종이는 우리의 정서 속에 깊이 녹아들어 단순한 물질로서의 대상을 넘어서고 있다.정종미의 방법이 시사하는 것도 단순한 종이의 물성의 드러냄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 속에녹아있는 종이의 정감을 조형적 수단을 통해 환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장판지의 때와 얼룩, 장지문의 퇴락한 색조와 흠자국은 단순한 대상으로서보다 우리의 정서의 자국, 정서의 응고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종미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독특한 정감의 원천도 실로 여기에 있지 않나 여겨진다. 재료에 못지않게 이미지에서도 이런 점들이 특히 두드러지게 포착된다. 예컨대 얼룩자체를 미묘하게 이미지로 구현시켜나간 <지도부인>, 장지에 콩기름을 구사해나간, 얼룩진 장판지를 보는 느낌의 <종이부인>은 재료 자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과정을 이미지로 끌어올린 뛰어난 예이다. 이번 전시의 중심 모티브인 <종이부인>은 한결같이 수제종이에다 들기름, 황토, 돌가루, 콩즙, 감불, 지료, 먹 등의 재료를 가미시킨 것으로 종이와 다른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화학반응이 그대로 조형화된 것들이다. 여기에 조형적 계산 못지않게 우연성이 가미된다. 마치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서서히 바래진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그가 선택하고 있는 여인의 이미지는 의외로 다양하다. 우리 주변의 현대적 여성이 있는가 하면 역사속의 여성도 있다. 또 <마릴린 몬로>같은 미국의 여배우도 있는가 하면 <삼지닥 부인>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들 여성들이 한결같이 고전적 풍모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특징이다. 오늘의 여성이기보다는 먼 고대의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인물로 변화된다. 아마도 그것은 종이라는 매재와 천연염료가 어우러지면서 구현되는 독자적인 이미지의 서술방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본다. 작가는 종이를 그 속성 면에서 여성에 비유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종이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고 어울린다. 달빛에 젖은 대나무 그림자를 걸러주 는 맛도 그렇고 무엇이든 싸고 덮어주는 맛도 그렇다. 두 공간을 가르면서도 은밀한 내통을 이뤄 주고 참고 인내하며 포용하는 근성 또한 그러하다. 물과 만났을 때 나긋함과 강인함을 함께 지닌 것도 그렇고 말면 말리고 접으면 접히는 찢고 바르고 헤지는 모양새가 남성은 결코 아니다.”즉 그는 종이의 속성에서 여성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그대로 조형적 과정으로 끌어올렸다. 종이가 곧 여성이고 여성이 곧 종이인 경지로 이끌어 간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종이의 속성에서 느끼는 것은 어쩐지 여성 일반이기보다는 한국의 여인, 전형적인 인고의 우리 어머니상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혜원의 <미인도>가 좋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보다 여주 부석사의 조사당 벽화가 훨씬 아름답다.” 고 한 작가의 말처럼 <종이부인>들은 한결같이 우리와 피로써 연결되어 있는 인물상으로 다정함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현실의 여인상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속의 인물처럼 아득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화부인>같이 구체적인 과거의 여인상도 있지만 한결 같이 옛 한국의 여인상으로서의 통일된 이미지로 떠오른다. 정종미는 종이작업에 못지않게 습식 벽화의 방법도 오랫동안 구사해오고 있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서도 <토부인><소년><난부인><시계부인><매부인>등 여러 작품이 이 영역에 속한다. 비록 종이와는 그 재질이나 방법이 다르지만 종이에 의한 방법이나 느낌은 프레스코의 그것과 별 차이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지가 방법을 통어해나가는데서 생겨나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작품은 두드러진 방법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의 통일성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케 한다. 전통회화가 더없이 위축되어 있는 오늘날 정종미가 보여준 신선한 방법의 개척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던져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1999. 11. 오광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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