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 “정종미 그리고 종이부인” 종이부인2 전 서평 2004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정종미는 한국의 전통미감과 미의식을 넘어서서 동양의 미술, 아시아미술의 전통에 깊이 매료된 작가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아시아주의미술 또는 동양주의에 대한 논의와 추종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새삼 아시아 미술에 대한 근래의 관심은 해방 이후 지나치게 서구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폄하되거나 외면했던 동양미술에 대한 주목과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사실 그간 우리는 아시아미술에 대해서 무지했던 편이다. 작가의 관심과 기호는 동양의 고미술, 전통적인 이미지와 색채와 장식, 문양과 골동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있고 그것들이 작품 속에 무한히 용해되고 있음을 본다. 사실 이 고졸한 동양미술 전반에 대한 작가의 회고적이고 복고적인 기호의 뉘앙스는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작가가 다루는 색채와 재료, 질감 등은 그 감각의 힘 아래 취합되고 배열된 것들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다소 넓은 스펙트럼 아래 작동한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역시 한국전통미술을 지탱하는 실체들에 대한 질료적 체험과 실천적 이해 및 구현, 충실한 복원과 재해석 등이 가장 눈여겨볼 대목일 것이다.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버무려 놓아 걸러내고 추리고 삭혀 올려낸다. 한국 전통미술의 요체는 바로 그런 장시간의 발효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드러나는 아스라한 색감과 소박하고 무심하면서도 절묘한 격을 지닌 장식의 조화에 있다. 특히나 한국의 벽화와 불화, 조선조 여인네들의 장신구와 의복의 채색과 문양에 대한 깊은 관심은 작가의 화면에 산뜻하게 응어리져있는데 사실 그 모든 것들을 관통하고 지탱하는 것은 아늑한 시간을 덮어 쓴 골동의 미감이다. 그래서 작업은 오랜 시간과 세월 아래 눅눅히 절여진 색채, 바래고 흐려져 삭은 것들, 시간의 입김 아래 소멸되고 즙이 되고 가루가 되어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의 것들이 지닌 기이한 매력에 빠져있다. 그것들은 현존하는 인간에게 경이로움과 기이함, 숭고함과 엄숙함을 아찔하게 안긴다. 골동과 옛 것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는 사실 죽음과 소멸, 시체를 사랑하는 자의 기호를 반영한다. 삭을 대로 삭은 옷감과 빛바랜 천의 표피를 화면 위에 기이하게 부감 시키는 몇몇 작품에서 나는 미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는다. 그것은 이제 막 지하에서 출토되어 올라온 시신의 피부를 덮고 있던 의복에 가깝다. 화면과 바탕, 형상과 배경이 분리되지 않고 이미지와 색채, 재질이 불가분의 관련성 속에서 서로 죽이 된 상태가 순간 묘한 매력을 풍긴다. 허물 같은 것, 비늘이고 살갗이며 피부이자 뼈 같은 것들이 곤죽이 되어 어렴풋이 떠올라 어떤 이의 존재를 슬그머니 떠올린다. 작가는 물질을 빌어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들이고 주술과 제의적 치유의 과정인냥 재료를 매만진다. 종이가 살이 되고 천연 색채들이 풍화와 산화된 색감을 재현한다. 결국 그것은 시간을 재연한다. 그래서 박물관의 유물들에서 풍기는 느낌이 정종미의 작업에서 새삼 감각적으로 환생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부분 전신상 크기로 직립된 이 여인상은 조선시대 초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조선조 초상화는 남자들의 육체를 숭배하고 기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남자로 이어지는 피의 서약과 위계의 엄정함이 서린 초상화를 여인의 초상화로 대체하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인 셈이다. 영정의 형태로 격상된 여인상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다시 기념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의 그림자를 거닐고 등장하는 이 종이부인은 남성중심의 사회와 문화적 전통에 대한 비판이자 자신의 현실에서 여전한 그 전통의 습속에 대한 반성으로 작동한다. 여성적인 미감을 적극 되살리고 여성의 수공예적 전통과 규방문화의 노동을 계승하면서 재료의 여성성을 극화하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종이 자체에서 여인의 이미지가 절로 솟아올라 실루엣으로 고착된 느낌을 부여하는 이 작업은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통적인 염료로 설채設彩되어 있고 그 자체가 조형이 되어 응고되어있다. 그리고 이는 종이의 정령, 무명의 여인들의 영혼의 결정이기도 하다. 다분히 종이의 속성과 한국 여인의 신고의 삶이 동일한 궤적으로 겹쳐지는 편이다.이것은 그림이자 부조이며 입체이다. 한편으로는 종이공예로 이루어진 인형을 대하는 듯도 하다. 나로서는 저부조로 부풀어 올라 실재 옷이 된 작업보다는 천 자체가 바탕 종이와 허물없이 녹아들면서 그림자처럼 형상이 떠오르는 작업, 벽화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이 더 좋아 보인다. 그것들은 풍성한 회화적 분위기와 재료 자체가 이미지와 적당한 거리에서 으깨지고 살아나는, 긴장감 나는 묘미를 동반하는데 반해 흡사 고증에 의해 복원된 미라나 회화 속 인물의 입체화 작업 같은 경우는 자칫하면 전통의 건조한 복제에 머물 아쉬움도 있다. 작가의 작업은 전통회화 안에 깃든 안료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자 그것을 되살리는 두 가지에 의해 견지된다. 종이와 천, 옷감 역시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여자의 이미지가 재현되고 있지만 그것은 재료의 여러 성질과 기법을 구현하는 매개로서의 위상에 더 근접되어 있다. 따라서 작업은 크게 전통회화(이미지)의 임모화인데 여기서 진정한 임모란 재료에서도 일치되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작품성을 논할 때 조형성과 예술성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셈인데 재료와 그것이 지닌 물성이 회화를 성립시키는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작업은 교육적 측면을 동반하면서 고증과 수복, 재료학과 기법의 전수 등과 폭넓게 연루되어 있고 그것들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의미를 지닌다. 정종미의 작업은 현재 동양화가 처해있는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을 실존하는 유물의 복원과 이를 바탕으로 해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혹 재료체험이 과도한 의미를 앞세우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그간 우리네 미술교육은 재료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숙련을 늘 간과해왔었고 나아가 이 전통적인 재료체험을 지닌 이들이 드물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거리가 상대적으로 정종미 작업을 돋보이게 한다. “대상과 자신과 재료를 구별하지 않는 일, 그것들의 물성을 깨달아 가는 일, 거기에 인생을 부여하며 그것과 동화되어 가는 일, 우리의 선인들이 그러하였듯이 내 손끝에서 느껴져 이루어져 나온 이 일들은 너무나 은밀하여서 말로는 다할 수가 없다.”(작가노트)작가는 전통적인 재료체험과 이를 정확하게 알고 쓰는 것의 중요성을 거듭 말하는데 그것이 그림의 근간이기에 그렇다. 전통적인 방식의 공정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만의 재료로 일구어낼 수 있는 표현 기법들과 그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 고스란히 작업이 된다. 그리고 그 물성을 통해 비로소 옛사람과 만나고 그들의 삶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며 아울러 다른 재료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독특한 조형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확신한다. 전통기법으로 되살아난 천연색은 인간의 실측과 시측을 벗어나 있고 모국어의 형용과 수사를 비껴나 있다. 그만큼 오묘하고 아름답고 형언하기 어려운, 가늠하기 곤혹스러운 난해한 색채, 그래서 더없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색이다. 종이와 천, 천연색을 중심으로 콜라주, 바느질과 염료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정종미의 작업은 염직과 염색, 재단과 가공 등을 포함해 여러 기법과 방법론의 혼성으로 촘촘히 직조되어있다. 작가의 작업은 우리 전통재료의 실질적인 구현과 쓰임과 응용에 대해 말해준다. 양식적, 질료적 측면을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것이 미술사인 것이다. 우리네 전통 회화는 정신적인 면에서만 자연과의 일치, 동화를 주창한 것이 아니라 재료에 있어서도 진정한 자연회귀를 추구하였다.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자연이 하나 되는 경지 말이다. 사실 자연의 섭리를 담은 건강한 그림이 또한 환경 생태적인 그림일 것이다. 아울러 전통회화는 동시대 현대미술처럼 아이디어나 언어, 개념의 현란한 유희가 아니라 인고의 세월 속에서 시간과 노동을 통하여 비로소 삶을 느끼고 예술에 이르게 했음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전통회화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 역시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정종미는 바로 그 곳에 자기 작업의 닻을 내린 이다. 그러나 미술이 의미와 자기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하면 할수록 강박이 되고 관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새삼 나는 전통의 현대화란 문제, 전통기법의 재생 등이 하나의 알리바이로 고착되기보다는 좀더 유연하게 넓혀지면서 그 안에 이런 저런 의미도 다 녹아 완전히 자연스럽게 한 개인의 모든 것이 될 수밖에 없어서 나오는 그런 그림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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