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미술평론가,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교수) 장인과 예술가, 전통의 경계 정종미의 작업실은 그득했다. 방마다, 선반마다, 구석마다 이 작가의 재료에 대한 천착의 과정을 증명하는 종이며 천들이. 그리 좁지 않은 변변한 장소에는 그동안 생산한 작품이 포장의 옷을 입거나 또는 모서리가 닿아 닳는지도 모르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어나 벽에 기대선 그림들은 이들 매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종이에 붙여지는지 어떻게 탄탄하게 세월을 버텨내는지 말하고 있었다. 작가의 생산력과 넘치는 창작 의욕이라는 좀 오래된 관용구가 떠오르는 그런 작업실이었던 것이다. 순간 학생들에게 농담처럼 하지만 진심으로 물어오던 질문이 떠올랐다. “인류가 생산한 불가사의한 조형물인 이집트 피라미드라든가 청동기시대 거석들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물론 답은 간단하다. 채찍.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채찍은 인간이 꿈꾸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중세 세밀화나 교묘한 세공품들도 근저에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채근이 있다. 정종미의 작업실에서 이 ‘채찍’을 느꼈다는 사실은 필자를 당황시켰다. 21세기 현대 한국 사회에서, 결코 누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규모의 작업실에서, 전통방식으로 짠 모시에 전통방식으로 쪽물들인 옷감 한 필만 해도 만만치 않은 금액일 터인데 그러한 재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그 많은 물질들 속에서 채찍이라니. 아마도 자기 자신에게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작가의 성품이 엿보인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작업을 위하여 한 공정도 소홀함이 없는 자세가 그 철저한 재료 준비에서 시작됨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과 예술가에 대한 학술적인 구분은 장인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방식은 아는 사람이지만 무엇을 만들지는 모르며, 예술가는 작품 제작 방식을 알 뿐만 아니라 무엇을 만들 지까지 아는 사람이라는 무엇과 어떻게에 기준을 둔다. 그러기에 예술가는 창작할 수 있고 장인은 모방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정의에 의거한다면 결국 오늘날 ‘장인적 노고’를 높게 치하하는 분위기는 전통 제작 방식에 대한 경멸이라는 미술가 스스로 파고든 함정의 결과이다. 이른바 저자라는 것이 부정된 포스트모던이 지난 시대에 그동안 경멸하여 왔던 장인적 제작 과정을 미술가 스스로 터득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복제와 모방이라는 틀에 갇히게 될 것이다. 예술가의 노선을 택한 결과가 장인이 갖춘 미덕인 완벽한 제작 방식조차 습득하지 못하여 모방의 틀 안에 안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채찍’이란 작가의 타고난 바지런한 품성에 더하여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그리고 필자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중간에도 무리를 감수하여 온 팔이 쉬지 않고 작품에 콩즙바르기를 연속하는 동작에서 드러난 장인적 노고의 인식인 것이다. 정종미는 앞서 지적한 대로 전통에 충실한 작가이다. 그는 ‘전통적으로’ 어떻게 안료를 구했는지, 그 안료를 어떻게 그림에 사용했는지,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고려불화에서 근대 채색화까지 색을 알고 얻기 위해 공부를 한 작가이다. 하지만 또한 색에 대한 관심이 수묵운동이 한창이어서 미대 실기실에서 채색화를 그리면 천대받던 그 시절에 마음이 이끄는 채색을 찾아나섰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않은 개척자이다. 왜색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채색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전통’을 알고자 했기에 결국 그는 장인적 노고와 정신을 갖춘 우리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작품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전통을 찾아들어갔던 것처럼 자신의 삶, 동시대의 희망 그리고 정신적 여정에 이르기까지 미술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고 있다. 그는 우리 시대 장인적 노고와 내용을 갖춘 소중한 작가 중 하나인 것이다. 삶에 대한 경의, 종이부인 트래머리를 곱게 올리고 살며시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고혹적인 옛 그림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을 빌기도 하고 파마머리 뽀글뽀글한 채로 바삐 지나는 옆집 아줌마의 모습 같기도 한 여인들이 독자적으로 화면의 주인공으로 나타난 <종이부인>은 정종미 작품의 주요한 테마이다. 미국에서 종이작업과 판화 등을 공부할 때 그는 동시에 미국에서 강인한 삶을 영위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보았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종이부인들이다. 자식과 가족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며 지치지 않고 그녀들의 삶을 지속하는 그 힘이 한지와 같음을 느꼈고, 한지를 통해 그들의 삶을 말하는 작업을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매우 너덜너덜하게 닳은 종이로 치마를 해서 입힌 한 작품은 한지를 구기고 또 구기고 잡아 늘이고, 아주 못 살게 한 결과다. 그에게는 아무리 못 살게 굴어도 형태가 남아 있는 끈질기기만한 물질인 한지만큼 한국의 부인들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재료도 없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종이부인> 시리즈에서 기억할 일은 이들은 ‘아줌마’가 아니라 ‘부인’으로 호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3의 성(性)이라는 ‘아줌마’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지만 생물학적인 비하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반면 부인이란 제3인칭으로서 분명 존칭의 의미가 있다. 작가 스스로 여성임을 인식하고 여성에 대한 경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종이부인> 시리즈의 인물들은 그녀들이 어떤 형태나 색채, 재료로 표현되건 정면관, 입상을 고수한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여인 초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녀도와 닮아 있을지라도 그녀들은 고혹적인 자태보다는, 흘러나는 눈웃음보다는 담담히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과 굳게 다문 입술을 견지한다. 긴 머리를 치렁치렁 내려뜨린 아가씨도 단정히 서서 정면을 응시한다. 라캉은 ‘응시’가 미술에서 대상의 드러냄과 동시에 관찰자의 나타냄 또한 가능함을 지적하였다. 동양의 세계관에서 응시는 보다 정신적이어서 자기와 대상에 대한 성찰, 나아가 자연과 합일의 경지를 가능케 하는 매개를 의미한다. <종이부인>인 그녀들의 응시는 그림 속 그녀들이 전통적인 인고를 강요받았던 자신들의 삶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찰자인 현대 한국여성들의 질긴 생명력을 드러낸다. 한국 여성들의 숭고한 삶에 대한 경의. 그 경의의 행위로 작가는 한국여인의 상징을 도상화하여 영정으로 만들어 전시장을 채웠던 것이다. 일종의 제사공간으로서 전시장은 그들 옛 여인에 대한 경의이자 현대 수많은 부인들에 대한 애정이었던 것이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 중 80%가 넘는 소재는 여인이고, 그 그림들은 거의 남성 화가들이 그린 것이다. 근대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여성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기거나 철학적인 내용은 아닌 세속의 지식을 탐닉하는 실체로서 잡지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나타났다. 노동의 주체로서 여성이 드러난 박수근의 경우조차 그림 속 그녀들은 여성이 아닌 어머니로 존재한다. 이후 여성미술가들에 의해 생산된 현대 여성의 삶이 질곡하게 드러난 그림 속에서도 그녀들의 삶에 대한 고발 또는 자각은 드러나지만 그녀들에 대한 경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여성화가에 의해 여성에 대한 경의가 드러난 경우도 대부분 ‘어머니’라는 사회 기제 속의 존재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관념적인 여성 자체에 대한 경의가 부재한 한국 현대 여성미술에서 정종미가 차지하는 위치는 그래서 값지다. 이들 이름없는 관념 속의 여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고분벽화에 있었음직한 모습, 정확히는 일본 다까마스고분의 여인 그림과 흡사한 복장의 여인 <유화부인>에서부터인 성 싶다. 두루마기처럼 무릎까지 내려오는 상의에 색색의 주름치마를 입은, 물의 신 하백의 딸이자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의 아내이며 고구려를 건립한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눈앞에 들이밀고 있다. 장지에 천연 채색으로 제작하여 색감에서 고구려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벽화를 유추시키게 함으로써 유화부인의 실존성을 높인 작품인 것이다. 그녀는 예의 여인들처럼 정면을 응시한다. 관념의 여인이 아닌 역사적 실존 인물인 그녀의 시선은 당당했던 여인의 삶을 더욱 생생히 증명한다. 작가 스스로 역사 속의 여인들, 특히 유화부인에 대한 많은 생각을 전개할 예정임을 말하고 있고 또 조선시대의 허난설헌에 대한 생각도 진행하고 있다 하니 그녀들은 이제 그림 밖으로 걸어나와 현대 여성들에게 역사 속에 살 것을 당당히 주장할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 어부사시사 산수화는 전통적으로 남성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마음속에 품은 언덕인 흉중구확(胸中丘攫)은 시정에서의 삶을 반추하고 정화시키는 도구이다. 조선시대 사임당의 그림 속에서 산수화를 찾지 못한 것은 많은 작품의 산일이나 미확인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녀들에게 허용되는 세계가 아니었던 탓에 있을 것이다. 사임당의 이름이 그나마 화가로서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율곡 이이가 그녀의 아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지도 모른다. 여성의 글이 드러나지 않은 채 실명씨로 전하는 것이 많은 것처럼 작자미상의 그림 속에 그녀들의 세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성화가의 이름으로 허용된 산수화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근대 이후의 일인 것이다. 정종미의 <몽유도원>은 조선시대 화사인 안견이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자 세종임금의 아들이었던 안평대군의 청에 의해 그린 그림에서 화제를 딴 것이다. 하룻밤 꿈을 삼일 만에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는 속세에서 무릉도원에 이르는 장쾌한 자연경관에 대한 찬사이자 조선시대 초기 세계관과 뛰어난 회화관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정종미가 이 그림에서 화제를 땄다는 것은 우선 전통 산수화에서 배워왔음을 드러내거나 내용이 무릉도원임을 또는 기존 세계관의 새로운 해석을 의미하는 등 중층적 접근이 필요함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세상이 아닌 곳을 향한 세상의 정경으로서 무릉도원. 정종미의 화면에서 무릉도원은 삼베에 염료를 물들이고 물들여 가 나타난 푸른 초원이나 붉게 물든 화면에 점점이 복사나무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붉은 색과 푸른색의 경계가 사라진 곳에 존재하던 붉거나 푸른 나무들은 사라져버리고 없다. 다만 푸른색의 띠가, 붉은 색의 띠가 겹겹이 층층이 쌓여 있다. 나무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릉도원은 공간에 대한 상징, 산과 복사나무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비록 몸은 이곳에 있으나 마음은 선계를 거닐었던 회상인 몽유도원은 정종미에게서 자연의 산하에 대한 이해, 실제적 산수에 대한 관념적 표현이라는 역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번 전시의 <몽유도원도>는 나무뿐만 아니라 색띠마저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안견이 보여주던 실체가 없는 듯 하지만 견고한 골산처럼 화면에 짙게 번지는 원경을 배경으로 좌우로 색면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깊이에서 솟아나는 가라앉은 색을 배경으로 좌우에 선 사각의 색면들은 사각의 특성 자체로 구축적인 세계를 보인다. 좌우에 자리했던 도원과 실세계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구축적인 공간으로서 깊이나 무게의 차는 없다. 그렇다면 도원이나 현계가 실은 같은 세상임을, 이 세상 모두 하나임을 자연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흉중구확의 산중이 실제와 허상의 경계 없이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실존 그 자체였던 것처럼 말이다. 산수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관념을 시각화하는 방식은 <바람> 시리즈에서 보다 간명히 드러난다. 공간에 존재하는 바람을 그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바람에 휘날리는 천조각을 드리웠다. 이들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세를 통해 그 공간에 에너지가 존재함을, 바람이 가득함을 나타낸다. 너풀대는 천조각은 동네 여인들이 자식을 낳게 해달라거나 가족의 병이 낫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등 소원을 빌며 여인들이 서낭당에 걸었던 공물이나 그녀들의 치마를 떠올리게 한다. 또 여자 아기가 태어났으니 일정 기간 외부인이나 잡것의 출입을 금한다는 금줄도 연상시킨다. 이렇게 사회화된 여성적 공간을 상상케 하는 것은 그 유연한 흔들림과 염색된 아름다운 천의 색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는 바람을 표현한 내려뜨려진 천들은 때때로 붉은색, 푸른색 또는 갈색을 배경으로 한다. 같은 바람이어도 푸른색에 있는 천이 조금은 뻣뻣하고 지루하게 내리뜨려진 것과 비교하여 붉은색을 바탕으로 한 경우는 보다 세밀한 움직임, 살랑거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들 바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천의 흔들림을 통하여 봄이나 여름의 계절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계절에 대한 관심은 <어부사시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압개예 안개 것고 뒷뫼에 해 비췬다/배 떠라 배 떠라/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은 밀어온다/지국총 지국총 어사와/강촌에 온갓 곶이 먼 빛이 더욱 됴타.”로 시작하여 “여튼 갯고기들아 먼 소에 다 갓나니/돋 다라라 돋 다라라/져근덧 날 됴흔 제 바탕에 나가 보쟈/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밋기 곳 다오면 굴근 고기 문다 한다.”로 끝나는 시 <어부사시사>는 시정을 떠나 낙향한 선비가 경험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읊은 것이다. <몽유도원도>처럼 <어부사시사> 또한 전통적인 세계관을 반영하는 일반적인 개념이자 예술작품에서는 고유명사가 된 전통의 것이다. 오랜 동안 시제로 사용되어온 <어부사시사>는 윤선도에 이르러 한국적 서정을 담은 시가 되었다. “지국총 지국총” 즉 “찌꺼덩 찌꺼덩” 등 한문으로 음을 그대로 드러내 운율있는 시, 감흥을 소리로 나타낸 시를 적었던 때문이다. 그리하여 계절에 따른 자연과 인간의 생활을 읊은 <어부사시사>는 종이 위의 문자가 음율을 얻어 움직이게 되었다. 정종미의 <어부사시사>는 단순히 문학작품이 시각예술로 변환된 것이 아니다. 윤선도의 시를 읽고 느낀 감정을 표현하였다기보다는 자연의 사계를 표현함에 있어 시에서 상용하던 용어를 빌려왔을 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타인의 눈으로 본 자연이 아닌 작가의 감각이, 계절에 대한 생각이 배어 있는 것이 바로 <어부사시사>이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감각은 경외를 동반하고 있음을 연속된 작품에서 감지할 수 있다. 오리나무가 수분을 머금는 성질을 이용하여 작품에 응용한 노랑, 빨강, 초록의 작품은 먹감나무의 먹줄이 우연처럼 보이듯 그렇게 경계짓는 검은 선이 번져가는 작품이다. 보일 듯 말 듯 번지는 선은 운무에 갇힌 산의 실루엣 같기도 하고 바닷가의 해안선 같기도 하다. 하나의 통일된 색으로 이루어진 화면인 평면, 경계가 없는 지점에 경계가 있는 것이다. 최근작 <어부사시사>는 바탕으로 번져나는 물, 또는 계절 색에 오방색을 실었다. 부정형의 얼룩으로 이루어진 화면의 전면에 색동처럼 맞닿은 색면들은 삐죽삐죽 산이 되어 전경이 되었다. 오방색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작가는 우주의 기, 방향 그리고 자연의 실체를 형성하는 지수화풍수를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색면은 분명 준법을 깨뜨린 현대의 조형어법이다. 하지만 오래 닦은 기량으로 자유로이 운용하는 색의 조합은 선의 사용을 면으로 치환하였을 뿐이란 점에서 여전히 전통을 존중하는 작가의 자세를 드러낸다. 네가 물고기가 아닐진대 정종미의 최근작에 두드러지게 일관된 특성은 ‘과감한 색면의 사용’이다. 색면과 색면으로 이어진 화면은 <어부사시사>이든 <몽유도원도>이든 그 사각의 형태에서 전통 보자기를 상기시킨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눈에 보이는 모든 천을 이어붙여 무언가를 만들어내시는 분이었다. 할머니의 보따리는 작은 천조각들이 가득하였는데 밥상을 덮는 상보며 저녁식사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식구를 위하여 퍼둔 밥이 식지 말라고 아랫목에 넣어두는 밥보자기를 만드셨고, 벽에 옷을 걸어두고 가리는 천을 만드셨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까슬까슬한 여름 홑이불을 덮고 잤는데, 어린 마음에는 외할머니가 자꾸 이불을 만드시는 바람에 예쁜 캐릭터가 들어간 이불을 덮어보지 못하여 내심 외할머니의 바느질이 싫기도 했었다. 바늘 귀에 실을 넣지 못하여 옆에 붙어 앉아 실을 꿰어 드리던 시간이 먼 옛날이 된 지금, 그 사각의 천을 잇는 바느질은 박물관에서나 만나보게 되었다. 한국 여인 누구나 하였던 보자기 만들기는 이제 전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종미 작품에 나타난 사각의 형태는 알록달록한 오방색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보자기를 나타낸다. 보자기는 무엇이든 쌀 수 있으며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따라 형태가 변하기에 고정적인 형태의 유동적인 성질은 공유한 존재이다. 어깨에 날개가 돋기를 기다렸던 이상이 “방안에 든 햇빛이 보자기 만하게 들어왔다 손수건 만해져 나간다”고 했던 것도 실은 그 화사한 빛의 유동성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던가.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린다”로 『파우스트』를 마무리했다. 보자기는 모든 것을 싸안는 속성이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처럼. 그래서 정종미의 화면에 등장하는 색면은 보자기인 동시에 전통적으로 기의 실체인 오방색이며 또 생명의 근원이 되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싸는’ 것이 움직이는 에너지, 생명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전통적으로 장례에 사용하는 수의(壽衣)를 통해 보자기의 폭넓은 세계를 알았다고 전언한다.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경험한 ‘보자기 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보여진 장례의 수의 일습이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수의는 서양처럼 예쁜 옷을 입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망자 스스로 준비하여 죽음을 받아들이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혹여 스스로 준비하지 못했을 때는 망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해주는 선물이다. 몸에 입는 옷만이 아니라 손싸개, 발싸개, 얼굴싸개까지 있고 결국은 전체를 하나의 이불로 싸서 돌아갈 땅에 묻힐 준비를 끝내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천에 의해 싸여져 생의 마지막에 남긴 유일한 실체인 육신을 숨기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자기에 대한 작가의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자면 색이 있음은 생명을, 색이 거두어짐은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최근작에서 여성 인물은 더 이상 <종이부인>이 아닌 여인, 소녀, 미인도 등의 명제를 갖는다. 이는 물론 종이가 아닌 천이나 기타 다른 여러 물질을 사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주 뚜렷한 네모로 이루어진 색면들이 바둑판처럼 짜여진 배경으로 하여 또렷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색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실체를 반쯤 드러내기도 한다. 전통의상을 입은 옛 여인들이 화사하게 나타난 반면, 의상이나 장신구 등이 세련된 현대여성들은 은은한 파스텔 색조로 또는 무채색으로 나타난다. 물론 재료의 사용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현대 여인의 갈등,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부러움이 질곡하게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예전에 비해 짙은 색으로 성장한 그녀들을 작가는 “50이 넘으니 맘이 내키는 대로” 표현한 것이라 이른다. 얼굴이 반쪽만 드러났음에도 화사한 저고리의 여인은 속내를 내비친다. <추수>의 ‘어락’처럼 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마음을 알겠으며, 너 또한 네가 아닌데 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다만 그럼에도 전통사회의 그녀들이 타인의 삶만은 살지 않았음을, 그녀들 특유의 한지처럼 질긴 생명력과 보자기처럼 넓은 포용력과 오방색처럼 넘치는 생명으로 한 시대를 살았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정종미의 다음 계획에 가득한 역사 속의 여인들이 그녀 화실 밖으로 걸어 나오길, 기꺼이 세상과 조우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어머니의 어머니부터 전해진 삶이 아닌 여인에게서 여인으로 전해진,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해진 한 삶의 전형이 궁금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