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풍경 Blue Landscape모시를 남색으로 염색하고 한천을 여러 번 바른 다음 채색을 하였다. 모시나 삼베는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에 비단과 함께 회화의 바탕재로 많이 쓰여 왔다. 종이보다 성기며 특유의 조직과 결이 종이와는 또 다른 미감과 매력을 지닌다. 베틀에 손으로 짜기 때문에 크기의 한정이 있는데 이점을 이용하여 화면에 반복효과를 내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름답던 가을의 하늘들은 필름 속 풍경들처럼 연속되어 있는데 그 푸른 풍경을 모시의 서늘한 감각에 실어보았다. 어부사시사 보길도 Song of Fishermen모시를 염색하고 화면에 부착시킨 다음 채색을 수십번 반복한다. 색층 사이에 콩즙을 발라 투명도를 높인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국문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시조이다. 이 시조 속 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보길도의 정경과 파도가 일렁이는듯한 우리말의 리듬이 어우러져 최고의 시가문학의 경지를 보여준다. 윤선도의 이러한 시심(詩心)과 나의 화심(畵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시의 격조만 논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우리말로도 한시 못잖은 아름다운 시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듯이 나 또한 우리의 전통재료와 기법으로 서양의 어떤 회화양식 못잖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어부사시사-겨울 Song of Fishermen-Winter옛사람들이 지녔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비현실성에 매력을 느끼고 오히려 그러한 것에서 삶의 시각을 가지고자 한다. 겨울의 바다는 검은 색이다. 우주의 원색인 현(玄)색이다. 이 현(玄)을 상징하는 먹(墨)으로 바다를 그린다. 태양 빛에 의한 현상의 색이 아니라 저 너머의 색이다. 가물한 먹(墨)으로 어부의 겨울을 그린다. 겨울바다의 수심(水深)은 깊고 어부의 수심(愁心) 또한 짙어만 간다. 황룡사지 The Trace of Temple중국의 미학자 이택후는 한국을 방문하고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으로 황룡사의 빈터를 들었다 한다. 나 또한 황룡사의 빈터에서 신라의 그늘을 느낀다. 지금은 사라진 광명의 그늘.그 그늘은 검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다. 또 연기 같기도 하고 구름의 무리 같기도 하다. 먹을 갈아서 콩즙과 바로 섞기도 하고 먹작업을 먼저하고 콩작업은 나중에 하기도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색과 청색은 오배자로 염색한 것인데 매염제만 달리한 것이다. 콩즙작업을 한 부분과 염색만 한 부분은 다른 공간감을 보인다. 팔만대장경 The Tripikata Koreana팔만대장경에는 몽고의 침입에서 벗어나기 위한한민족의 염원이 담겨있다. 한자 한자 목판에 글을 새기며 흘린 땀과 피가 염원 그것이 되어버린 승화의 덩어리 머나먼 은하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밤하늘의 신비와도 같이 강한 인력으로 가슴 한바닥을 가득 채운다. 큰 호흡으로 옛사람의 숨결이 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