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오색도 오방색을 주제로 하였다. 전통적인 우리의 색개념은 서양의 삼원색을 기준으로 한 색 개념과는 다를 것이다. 색은 우주를 이루는 기본요소의 상징이기도 하고 방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색의 원류를 찾아 우리 정서와 연결짓는 일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백색도는 장지를 도침하고 아교포수를 한 다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고대안료인 고령토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호분이나 백악이 표현하지 못하는 질감을 형성시켜준다. 고령토를 아교와 잘 섞은 뒤에 나이프를 이용하여 계속해서 층을 쌓았다. 그 다음에 담묵을 여러번 발라서 질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몽유녹색도 봄날 물이 오른 새 싹의 녹색을 표현하기 위하여 두께가 다른 여러 종류의 한지를 선택하여 녹색을 흡수시킨 후 종이에 약간의 유질(乳質)성을 만들어주고 연결을 시킨 다음 종이의 두께로 인하여 형성된 종이의 주름을 자연스럽게 유지시키며 배접을 하였다. 고동색 나무는 장지에 기름과 안료를 함께 발라서 중후한 질감의 색을 만들어 녹색과 대비시켰다. 이것을 나무모양으로 찢어서 뒷면과 앞면에 붙였다. 종이로 인해 형성된 선(線)사이로 멀리 혹은 가까이 있는 나무의 느낌을 준다. 마치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녹색 봄바람이 부는 듯하다. 몽유도원도 夢遊桃原圖 Dream of Peach Garden 몽유도원도는 원래 조선 시대의 화가 안견의 작품이다. 이것은 견에 그려진 수묵화인데 작가는 우리 정서가 깃들어진 색감만으로도 이 도원의 꿈은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 수묵이란 조선인의 이상을 담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였을 것이다. 작가는 그들의 이상이 아닌 우리의 이상을 우리의 색에 담아보고자 하였다. 작가는 고려불화에 담김 색의 미학을 현대화시키는데 주력해 왔다.색을 담하게 수없이 깔아서 깊이 있고 투명한 화면을 만들고 콩댐 처리를 하였다. 천연의 안료와 염료가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색과 공간감은바로 고려불화의 상생의 미학에 기인한다.꿈속에 보는 도원처럼 멀리 아스라이 잦아드는 적색을 배경으로 두터운 삼베의 채색이 돋아난다. 조선시대 안견의 이상이 수묵으로 이뤄졌다면 우리시대의 그것은 채색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다 몽유도원도 夢遊桃原圖 Dream of Peach Garden 장지를 먼저 소목(蘇木)으로 염색을 하고 도침을 한 뒤에 아교포수를 하고 그 위에 채색이 올려졌다. 채색을 하는 중에 채색 사이에 콩즙을 올린다. 콩즙은 화면보호의 역할을 할 뿐아니라 화면에 그윽한 광택을 주어서 깊은 공간감을 유도한다. 소목에 의한 염색은 종이에 완전 흡수가 되므로 다음에 올려진 채색과는 차별된다. 채색기법이 요철의 이중효과라면 이러한 염색기법은 단지 들어가는 공간을 형성시켜준다.적색의 화면을 만들기 위하여 중색(重色)의 효과를 사용하는데 황색과 고동색을 중첩시키고 그 사이에 적색의 보색인 청색이나 녹색과 같은 보색을 삽입시킨다. 아주 깊이있는 미묘한 색감의 적색이 이뤄진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시대 안견의 작품이다. 이것은 견에 그려진 수묵화인데 나는 우리 정서가 깃들어진 색감만으로도 이 도원의 꿈은 표현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 시절, 수묵이란 조선인의 이상을 담기에는 가장 적합한 재료였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상이 아닌 우리의 이상을 우리의 색에 담아보고자 하였다. 길 작년 7월, 제주도에서 땡감을 공수해왔다. 생즙을 짜서 바로 종이에 물을 들였는데 그 색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여행을 다니며 이전에 와본 적 없는 낯선 길을 걸을 때 나는 잠시 내 삶을 떠난다. 그 길에는 계곡 옆 오솔길도 있고 포장 안된 자갈의 척박한 길도 있다. 아무런 목적없이 그 길을 간다. 그늘과 햇살이 교차하고 가끔 작은 풀 한 포기나 돌부리에도 서스럼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그런 길을 간다. 몽유남산도 경주의 남산은 자연의 박물관이다. 숲사이 길마다 계곡마다 나는 신라인을 만나고 부처도 만나고 또 고승도 만난다. 시간을 넘어 공간을 지나 그들과 만나는 기쁨은 단순한 산행과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남산에 오른다. 남산에는 하늘빛이 새롭고 물 냄새가 푸르고 돌향기가 난다. 산사이 나무사이 돌마다 오르며 나는 과거로 신라로 자꾸 거슬러 간다. 그 숲길, 신라로 가는 그 길을 그려보았다.세 겹의 두터운 장지를 자른 다음 아나토 씨앗으로 염색을 하였다. 이것을 다시 연결하고 조합하여 나는 나의 작은 남산을 만들었다. 아나토 씨앗의 색감은 나로 하여금 남산의 흙빛을 떠올리게 한다. 남산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단순히 일상을 떠나기 위해서 혹은 아름다운 자연을 찾기 위한 이도 있을 테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추억의 여정이다. 잦은 박물관순례도 이러한 이유로 내게는 하나의 여행이 된다. 옛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헤매면서 오랜 시간과 공간의 흔적에 탐닉해본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늘 그곳에 있는 한 아름의 남산. 남산은 마치 타임 머신 마냥 나로 하여금 천년의 시공을 훌쩍 넘게 한다. 산보같은 산행이 시작되면서 남산은 골마다 바위마다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조그만 굴속에 세월과 같은 바위를 이고 있는 감골 부처님은 어린 시절 아랫목에 앉아 바느질하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 옆에 누워서 턱 괴고 바라보고 싶기도 하고 뭐라고 보채기도 하며 그 곁을 떠나고 싶지 않다. 절벽같은 바위에 흐르는 물길같은 유려한 선의 삼릉골 마애불상.그 앞에선 나도 시간처럼 흘러가 버리리라.고도(古都)를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인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불상. 집채만한 바위덩이에 극락을 이뤄놓은 탑골 부처바위. 바위를 돌고 또 돌며 돌의 마음을 쓰다듬고 느끼며 골마다 숲마다 샘물처럼 고여 흐르는 명상과 열반. 가슴에는 남산만한 영감을 한아름 안고서돌아오는 오솔길의 햇살받은 흙빛은 부처님의 살색임을.... 그 숲길, 신라로 가는 그 길을 그려보았다.세 겹의 두터운 장지를 자른 다음 아나토 씨앗으로 염색을 하였다. 이것을 다시 연결하고 조합하여 나는 나의 작은 남산을 만들었다. 아나토 씨앗의 색감은 나로 하여금 남산의 흙빛을 떠올리게 한다.손으로 짜서 만든 목면을 황토로 염색을 하고 그위에 땡감의 즙을 발랐다. 감즙은 황토와 잘 어울리며 깊이있는 심연의 색을 만들어준다. 감물은 광선에도 강하며 강한 보존력을 지닌다. 이 염료의 따스한 색감에 남산의 흙빛이 스며있다. 황룡사지 중국의 미학자 모씨는 한국을 방문하고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으로 황룡사의 빈터를 들었다 한다. 나 또한 황룡사의 빈터에서 신라의 그늘을 느낀다. 지금은 사라진 광명의 그늘.그 그늘은 검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다. 또 연기 같기도 하고 구름의 무리 같기도 하다. 먹을 갈아서 콩즙과 바로 섞기도 하고 먹작업을 먼저하고 콩작업은 나중에 하기도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색과 청색은 오배자로 염색한 것인데 매염제만 달리한 것이다. 콩즙작업을 한 부분과 염색만 한 부분은 다른 공간감을 보인다. 몽유황색도 고서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한지의 절은 종이 냄새도 그러하지만 표지의 누런 황색은 참으로 푸근하다. 옛사람들은 황벽으로 이 표지를 염색하였다 한다. 나 또한 이것으로 염색을 하고 포수를 한 다음 다시 채색을 올렸다. 수없이 겹겹이 올려진 투명한 채색 뒤로 침전된 황벽의 색이 떠오른다. 색 넘어 색, 그 너머의 또 색. 수없이 반복되는 색의 울림은 의식을 흔들고 여음은 길다. 마치 일상을 훌쩍 떠나 도원의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것처럼 ... 몽유주역도 인사동 좌판에서 고서를 하나 얻었다. 주역이었다. 고서를 보면 퇴색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흐르지만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재래식으로 만들어진 고서의 종이는 얇지만 질기며 특히 염색할 때 아주 품위있는 색을 만들어 준다. 호두껍질의 흑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세 겹 장지 위에 붙였다.조상들의 삶과 이념이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