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의 색은 진혼의 색이다. 이 진혼색으로 한 바탕 살풀이를 하려한다. 우주 대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그것이 교감하며 모든 매듭과 맺힘이 풀어지고 화해되기를 빈다. 진혼색은 인공색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얻어진 자연색이다. 자연재를 사용하여 맑고 깊으며 발효되고 절은 듯한 색감으로 한국 여인의 질긴 포용력과 강인한 여성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조각보..진혼곡’ 은 일종의 살풀이 혹은 해한(解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채색전통은 초상화/영정화나 민화/불화 외에도 규방의 공예인 보자기에서도 나타난다. 그 중 조각보는 한국만이 지닌 독특한 양식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성에 의해 맘껏 피워진 것이다. 한국 여성의 영혼이 담겨진 색채로 상징된 조각보를 통해 모든 자연에 내재된 여성성에 경배를 올리고자 한다. 한지 중에도 가장 얇은 박지(薄紙)를 염색/코팅하고 연결하였다. 한국의 여성사를 이것에 담아보고자 한다. 성황당에 널려 있던 그 오색의 천들처럼 색으로 여성을 찬미하였다. 상여의 지화는 오색을 사용하여 영혼을 위무하고자 한다. 신윤복의 미인은 지화를 만나 ‘사미인곡’으로 승화되었다. 지화는 한지의 질긴 성격과 염색의 효과를 이용한 민간의 장식인데 많은 삶의 염원이 담겨있다. 여인의 치마는 세계를 향유하는 은밀한 휘장이다. 이것에 의해 세상은 가려지거나 드러나거나 역사는 창조되어 온 것이다. 자연의 염료/안료 그리고 온화한 광택을 만들어주는 콩댐 기법을 중첩시켜 간색의 색면을 만들어 배치하였다. 한국의 샤머니즘적 기원의 색채 의미를 담았다. 가장 원천적 자연성/여성성으로 돌아가 그들을 경축하고자 하였다. 세상이 허무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본인은 예술을 한다. 예술은 나를 채워주는 궁극의 그 무엇이라고 판단한다. 허무를 넘기에는 이 세계에 대한 보다 궁극적 이해가 선제되어야 하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한다. 동양미학의 궁극적 목적은 대상과 나의 만남 즉 ‘접신’이며 본인 역시 그것을 추구하여 ‘나’가 아닌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대상과의 일치감이 나의 예술 행위의 근본적 목적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자연일 수도 있고 생명일 수도 있으며 여성일 수 있으며 종이나 안료와 같은 재료/물질일 수도 있고 붓과 같은 도구일 수도 있다. 오랜 노력과 시도를 통해 이것들과 만나고 하나되는 과정이 본인의 예술적 과정이다. 스러지고 사라지는, 하쟎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 – 색, 자연, 여성 – 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고 경배를 올리고자 한다. 2021 4 25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