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종이, 한지에 대한 애정은 미국 종이공방의 수련과정에서 출발되었다. 그곳에서 전세계의 재래식 종이를 접하면서 한국의 한지가 가장 질기면서 유연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한국여성의 성정이 이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 자신 속에 오래 잠재되어있던 여성에 대한 수많은 감상과 감회들이 종이를 만나 종이 부인의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그 많은 여성들, 아름다우면서 애절한 그러나 처절하고 질겼던 그 여성들이 종이와 만난 여정은 나 자신 역시 여성이면서도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여성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하나의 도정이었다. 종이부인은 ‘She’, ‘미인도’, ‘보자기 부인’ 그리고 ‘역사속의 종이부인’등으로 변천해왔다. 익명의 한국 여성과 역사 속에 실존했던 여성까지를 망라하면서 이러한 의도의 본질이 여성에 대한 인정과 존경 그리고 경외를 위한 하나의 숭고한 행위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종이를 나의 피부처럼 허물처럼 만지고 접고 구기며 손바닥의 지문이 사라지고 인대가 문드러지도록 찢고 바르고 덮으며 여인들과 만나고 부둥켜안고 가슴을 나누었다. 종이를 통해 보자기를 통해 색채를 통해 모든 여성스럽고 은밀한 언어들을 통해 종이부인은 진화해 온 것이다. 가족의 역사 속에 어머니는 늘 중심에 계셨다. 마치 한국 근대사의 소용들이 한가운데 서있던 여성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계셨고 그러한 모습의 어머니는 곧 종이부인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성장을 하며 내가 만났던 내 주위의 많은 여인들 할머니 어머니 언니 친구들 역시 익명의 종이부인으로 태어났다. 마치 베틀 앞에서 고된 노동을 감수하던 아낙들처럼 그 여성들을 색으로 조각으로 꽃의 모습으로 직조하며 시간 너머의 여인들을 만나고 그 성정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하였다. 한 나라의 역사와 가족의 역사가 별개가 아니며 하나로서 깊이 연결되어있음을 나는 종이부인을 만나면서 확인하게 되었다. 나의 개인사와 함께 여인의 역사는 조각보 속에 혹은 종이 꽃 속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 땅에 가장 적합한 생태조건을 갖춘 닥나무처럼 이 땅에서 태어난 조선의 여인들 또한 닥과 비슷한 기질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그 어머니인 할머니,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서 나는 이 닥섬유와 같은 강인한 근성과 질긴 기질을 발견한다. 한국의 여성들은 참고 견뎌내는 인내심이 강하며 또한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하는 포용력이 큰 사람들이다. 나는 닥종이에서 우리 한국여성의 기질을 발견한다. 종이와 여성은 생태학적인 면에서 기질을 공유하고 있다. 오랫동안 장지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를 찢고 갈고 바르면서 이종이가 지닌 기질과 내가 거기에 담고자하는 여성성이 일치함을 느낀다. 종이 부인은 이렇게 풍우와 서리를 참고 견뎌온 닥나무처럼 이 땅의 야멸찬 역사를 온몸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거름으로 희생하고 모든 것을 아쉬움 없이 내어준 모든 여성들에게 올리는 경배이다. 작가노트 201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