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혜원의 미인도가 좋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보다 영주 부석사의 조사당 벽화가 훨씬 아름답다. 이 그림들은 숨결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숨결..나는 이런 숨결을 지닌 인간을 그리고 싶다. 가까이 다가가면 가녀린 맥박과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을 그리고 싶다. 은은히 품은 빛, 숨결같이 고른 표피, 체온을 받아 주는 푸근함.하지만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강인함, 질긴 근성. 종이 위에 숨결을 담는 일, 인성을 부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다듬이 위에서 도침을 하고 담채의 수간 안료를 아교와 수없이 바르기, 콩을여러날 불려 갈아서 콩즙을 짠 후 수없이 올리고 닦고 지우고 훔쳐내기, 그런 후에 다시 찢고 붙이고 뜯어내기.그 과정에서 나의 의도를 멀찍이 벗어 난 것들을 버리고 체념하고 용납하기.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무너질 듯한 어깨, 손가락 마디가 갈라지는 듯한 고된 노동 속에서 가끔 몰려오는 회의...이것이 나의 업인가? 나 또한 신들린 무당에 다름없지 않은가? 접신을 위해 올려진 제단 위에서 굿판을 벌이는 무당의 엑스타시 - 문득 내 앞에 시선을 보내는 종이부인. 혹자는 묻는다. 왜 종이의 여성인가라고.내가 보기에 종이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고 어울린다. 달빛에 젖은 대나무 그림자를 걸러 주는 맛도 그렇고 무엇이든 싸고 덮어주는 것도 그렇다. 두 공간을 가르지만 은밀한 내통을 이뤄주고 참고 인내하며 포용하는 근성 또한 그러하다. 물과 만났을 때 나긋함과 강인함을 함께 지닌 것도 그러하고 말면 말리고 접으면 접히는,찢고 바르고 헤지는 모양새가 남성은 결코 아니다. 권위가 아닌 포용, 강요가 아닌 관망, 수직이 아닌 수평적 수용력, 대지와 같은 모성의 후덕함.비오거나 습기찬 날엔 맘껏 젖어버리고 청명한 한낮엔 마른 바람을 걷어낸다. 우리 종이 이 종이 위에 여성을 부여하며, 나는 인생의 많은 이치를 깨닫는다.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자체가 조형언어가 되어버린 종이부인의 어법은 전통적인 묘사법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지금에 있어서 전통적 필법에 의한 인물묘사는 어쩌면 조선 시대에 고려 불화를 고집하는 것과 차이가 없는 건 아닐지 전통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여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삶의 본질은 갔지만 형태는 다르기 때문이다. 내 손을 통해서 가꾸어진 종이의 물성. 손맛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하나 하나의 섬세한 구조.아크릴같은 합성재가 아니라 천연재인 콩즙 등을 쓴 것은 종이와의 궁합을 고려한때문이다.상호적인 것, 대상과 자신과 재료를 구별하지 않은 일, 그것들의 물성을 깨달아 가는 일, 거기에 인생을 부여하며 그것과 동화되어 가는 일, 우리의 선인들이 그러하였듯이 내 손 끝에서 느껴져 이루어져 나온 이 일들은 너무도 은밀하여서 말로는 다 할 수가 없다. 장자의 한마디가 귀에 새롭다. 제나라 환공이 책을 읽고 있는데 윤편이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물었다. “당신이 읽는 책은 무슨 말입니까?”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그 성인은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면 당신은 그 성인의 껍데기를 보고 계시는군요.” . . . 윤편이 말하길 “저는 일에서 얻은 경험을 말합니다. 수레바퀴를 깎는데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끼우기는 쉽지만 견고하진 않습니다. 덜 깎으면 잘 끼워지지 않습니다. 빠르거나 느리지 않는 것은 손에서 얻어져 마음에서 이루어지니 이 이치는 말로는 할 수 없고 심술(心術)로 짐작만 할 뿐입니다. 자식에게도 전해 줄 수 없는 것이어서 늙어 칠십이 되도록 수레깎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옛성인도 깨달은 바를 전해주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니 당신이 읽고 있는 그 책이 어찌 옛사람이 토해 놓은 껍데기가 아니겠습니까” 옛날 우리의 도공과 지장이 표현하려 애쓴 것이 이러한 것들이 아니던가? 나이 들어 기운이 쇠하고 손마디의 살과 근육이 말라 지혜만 남게 되면 골기를 담은 먹작업을 해 볼까 한다. 동기창이나 그 누구를 앞세운 먹작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먹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균형잡기. 서커스단의 외줄타기마냥 역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또한 현실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한걸음 한마디에 온 정성을 다해 나아가는 일.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기울거나 쏟기지도 않으며 유연한 균형미를 갖춰가는 일 종이처럼 한결같이 고른 숨결을 유지하며 “나” 를 찾아가는 길.그 길에 종이부인과의 따스한 만남을 기뻐하며 ... 1999년 가을 소심헌에서 종이 부인 (미이라) 대영박물관에서 미이라를 보았다. 무서우리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름다웠다. 시간은 인간의 시신마저도 신비롭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가.물기는 다 증발하고 오직 건조함만이 남아있는 미이라가 왜 아름다운지...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재래식의 방법으로 만든 우리 한지를 호두껍질로 염색을 하였다. 소위 월낫색이라 하는 짙은 고동색으로 물들여졌다. 이것을 찢어서 풀로 붙이고 다시 떼어내고 붙여가면서 종이가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상심하며 종이가 선뜻 부인이 되지는 않겠다는 것을 온몸으로 아프고 저려가며 급기야는 눈물마저 훔쳐가며 작업을 하였다.눈물많고 사연많은 종이 부인은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다. 이 그림 위에 떨어진 눈물이 종이부인의 영혼이 되고 숨결이 되었음이다. 성모-마돈나 (Mrs. Madonna) 어머니는 너무나 크시고 깊은 분이시다. 어머니가 아니시면 우리 가정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시겠지만 자식을 위한 배려와 인내는 더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성모라 부른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영원히 남기고 오랫동안 제단에 모시고 경배를 들이고 싶다.우리 종이는 어머니와 많이 닮아있다. 얇고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모습이 어머니와 똑같다. 종이에 어머니의 모든 것을 담는다. 지도 부인 동양에서는 인간과 우주의 구조가 같다고 본다. 흙은 살이고 돌은 뼈이며 물은 피다. 혈맥과 지맥은 같은 구조와 맥락이며 따라서 인간은 소우주이다. 고지도를 보면 늘 감동이 와 닿았다. 이 고지도와 여인의 이미지를 섞고 여기에 위와 같은 동양의 철학을 담았다. 종이 부인 (Humor, 해족 부인) 종이부인 시리즈 중 최초의 작업이다. 묘사와 꼴라쥬 그리고 펄프 페인팅의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안정감 있는 자세를 만들다보니 뭔가 약간 해학적인 느낌이 연출되었다. 고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내 안에 있는 객기가 자연스레 발로된 것 같다. 나 자신 가끔 비정상적인 돌연한 행동으로 일상을 벗어나 보려고 어설픈 몸짓을 한다.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나는 배우가 못된 한풀이를 하는지 가끔 평소에는 안하던 짓을 한다.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질과 천성 ...정상적인 것에 대한 반란...이 몸부림들은 관성으로부터 이탈해보려는 혹은 나의 밖에서 나를 보고자하는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매번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채 미적한 상태를 유지하다보면 어느새 그림으로 그것이 돌출되기도 한다. 엄격하거나 혹은 우아하고 고상한 여타의 종이부인과는 다르게 이 종이부인은 많은 감상자들을 웃겼다. 익살스러운 재미. 그것 또한 그림 보는 재미중에 하나임을 우리 조상 단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이미 충분히 맛보았지 않은가. 수묵 부인 신윤복의 미인도, 김홍도의 풍속도 등 우리그림 안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이 많이 있다. 모두 섬세하거나 단아한 선으로 윤곽을 잡고 담채를 올린 그림들이다.이 그림도 위의 그림과 같이 수묵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바탕은 많은 차이가 있다. 바탕은 직접 종이뜨기를 하였고 얼굴과 목은 전지작업으로 한 것이다. 기존의 수묵화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방법들이 쓰여졌다. 물과 먹이 만나 이루어내는 농담의 세계를 ‘종이만들기’ 와 ‘오려붙이기’의 기법과 연결시키고 여인의 심성을 사색적인 모습으로 표현해내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로 인한 표정은 없지만 내밀한 은어와 호흡이 느껴진다. 이 수묵의 여인을 위해 나는 먹을 갈고 붓을 적셔 농담과 선을 그려보았다. 이 여인은 내 가슴에 비치는 나의 그림자이기도 하고 가끔 그리워 생각나는 나의 오랜 친구이며 또한 무채색의 시절을 말없이 견디어 온 모든 여성이기도 하다. 소녀 (기억) 뭔가 심술궂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짱구 이마, 쭉 찢어진 눈매며 얇은 입술에 독설이 가득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곁에는 마치 여인 열전마냥 이런 모습의 여인이 순차적으로 등장했었는데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늘 그녀들에게 시달리곤 했다. 첫 번째 그녀는 한 집에 살던 친구였는데 재미있게 놀 때도 많았지만 뭔가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땐 늘 삐치고 수가 틀리곤 했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날 한 지붕 아래 태어나서 유년기를 같이 보냈는데 나는 주인집이고 그녀는 세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동거할 동안 나의 인생은 늘 그녀의 비위맞추기, 따라다니며 달래기, 좋은 것은 다 양보하기 등 거의 도 닦는 수준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인생을 예감했다고 할까. 나는 삶이란 이런거구나. 어쩔 수 없는 것이지..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였고 불길한 예감대로 내 인생은 감히 여인 열전에 비유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만 빼면 나의 유년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희열에 차오르는 그 기억들.대체로 그것은 인간에 의한 것은 별로 없고 주로 나무와 꽃, 가랑비 등의 자연물이나 거북이와 같은 미미한 생물들에 의한 것이었다. 어느 봄날 늦잠을 자다 일어나보니 엄마도 없고 적막히 큰 집에 나만 있었는데왠지 두렵지 않았다. 봄비가 사리듯 내리는 정원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봄비는 나에게 나긋한 손길을 보내었고 그 손길에 내 마음은 한없이 흔들렸다. 그 비는 찬란했고 그 순간 나는 생명의 섬광을 보았을까. 내가 늘 뛰어놀던 정원은 언제나 동화속의 숲 마냥 나를 환호하게 만들었다. 자그마한 연못이 두 개 있었고 그 연못에 사는 거북이 식구는 나의 친구였다. 정원 안쪽 마당 구석을 차지하는 감나무는 나에게 멋진 목걸이를 늘 선사해줬고 앵두나무, 사철나무 갖가지 나무들이 모두 나의 벗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나의 정원은 나의 행복의 원천이었다. 나의 유년 시절, 그 숲 속의 행복은 늘 그녀로 인하여 깨져버리곤 했다. 여하튼 그녀는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 할 때 쯤 내 곁을 떠났고두 번째 세 번째 여인들을 만나면서 나는 성장을 했고 이제 인생의 한 고개를 막 넘어선 이 순간에도 나는 그녀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다. 이 그림은 그녀들의 종합이미지라고 할까여성들이여 부디 여성다워지길.. 황토 부인 한 때 뉴욕의 소호에 있는 디오도네 페이퍼 밀에서 페이퍼 메이킹 공부를 하였다. 회화만 하던 나로서는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하잖은 나무껍질과 낡은 헝겊 등이 칼질, 물질을 거쳐 아름다운 종이로 탄생되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모두 접할 수 있었으며 우리 한지의 특수성과 매력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 닥종이는 세계에서 가장 질긴 종이이고 빛 투과성을 지니며 호흡을 한다. 조선대에 만들어졌던 종이가구, 종이텐트, 종이우산, 종이 그릇 등 생활문화가 모두 이것을 증명해준다. 이 그림은 기름 바른 장지를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작업을 하였는데 황토와 종이를 섞어서 수제 종이를 만들어 붙였다. 내 곁에 머물던 많은 여인들의 그림자를 이 그림에 오려붙였다 Mrs. 마릴린 마릴린 몬로! 聖女와 창녀 사이의 여인 누구는 그녀를 성녀라 하고 누구는 창녀라 한다. 그녀 자신 역시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다 사라져갔으리라그러나 그녀 뿐 아니라모든 여성은 성녀이자 또한 창녀라는 생각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성적인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편안하고 순진한 미소 때문에 그녀를 좋아했다. 기름을 먹여 바래고 절은 황색에 그녀의 금발이 떠올려지고 합죽선의 부채종이가 치마가 되어 나부끼며 오래 만에 그녀는 내 그림 속으로 외출을 하였다. 아이리스 부인 아이리스는 서양의 신화에 나오는 요정의 이름인데 물가에 자라는 풀이름이기도 하다.이 아이리스 풀을 잘라서 물에 삶은 후 섬유질을 비터에 갈아서 종이를 만들었다. 그 위에 마른 아이리스 풀을 붙여서 여인의 이미지를 담았다. 아이리스라는 이름의 여인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종이부인 – 불 여성이 지닌 속성은 복잡 다양할 것이다. 그 다양함 중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내 그림에는 그런 다양한 ‘女性’이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어머니나 아내의 모습인 여성에게서 나는 일종의 불성을 느낀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회일수록여성의 존재가 미미할수록 여성에게 부여되는 고행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자의든 타의든 여성은 이 고행을 감수해야하고 운명으로 접수한다. 현대의 여성은 또 조금 다른 의미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르나 그런 여성의 삶도 과거 여인상의 극복이거나 또 다른 형태일 것이라 여겨진다. 모든 여성은 내면에 부처를 담고 있다.많은 문학과 회화에서 불성으로 묘사된 여성을 찾아볼 수 있다.불심으로 표현되는 자비심과 자애심은 남성적이라기보다는 여성적인 형태라고 느껴진다. 나의 삶에 거울처럼 비쳐진 여성의 모습은 바로 가시나무를 밟고 선 부처의 모습이다. 삶의 고통도 여성에겐 한갓 애잔한 미소로 치유된다. 인고의 삶을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이모와 언니 그리고 친구들 그녀들과 삶을 나누며 나는 그녀들의 총체적 모습에서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들의 삶에서 종교적 숭고함을 느낀다. 삼지닥 부인 삼지닥은 일본에서는 미츠마타라고 부른다. 가지가 세 개여서 삼지닥이라 한다. 닥은 많은 종류가 있는데 삼지닥은 그 중 하나이며 주로 바닷가 쪽에 많이 서식한다. 삼지닥을 삶아서 섬유질만 얻었는데 고해(방망이로 두들기는 것)를 하니 마치 손으로 짠 곱고 섬세한 편직물마냥 너무나 때깔이 고왔다. 이걸 갈아서 종이를 만들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위에 얹어보니 그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하여 이 그림의 제목은 삼지닥 부인이 되었다. 梅 부인 경복궁 뛰뜰에 가면 굴뚝과 담벼락에 아주 아름다운 부조 그림이 있다. 매화나 국화 같은 꽃그림도 있고 해태와 같은 동물그림도 있다. 경복궁에 갈 때 마다 꼭 들러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보곤 하는데 애석한 것은 이전 구한말 까지만 해도 종로나 광화문 일대에 있는 집들의 담벼락이 모두 이런 꽃담이었다는 것이다. 그 흔하던 꽃담과 꽃길, 꽃마을은 다 사라져버렸다. 지금 그 길이, 그 담이 남아있다면, 잠시라도 그 길을 지나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아리답고 이쁠지...경복궁 부조 그림 만하지는 못하지만 사라진 꽃담들을 떠올리며 매부인을 그려보았다. 시계 부인 시계와 부인의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여성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젊고 아름답던 어머니가 이제 할머니가 되시고 곱던 피부는 검버섯이 앉고 모든 육신은 소모되어간다. 나 역시 그 과정을 받아 안으며 소진할 것이다. 卵 부인 석회를 밀가루 반죽 만들 듯이 치댄 후 거기에 계란껍질을 섞었다. 계란껍질은 아주 거칠고 투박한 질감을 만들어 준다. 난부인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