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와 모시에 천연안료와 염료 등을 사용하여 만든 깊고 은은한 색과 질감에 여성성을 담아보았다. 한지와 모시는 무척 질기면서도 포용력 있는 바탕을 지니고 있어서 천연의 색을 잘 받아들이고 또 자연스럽게 발색한다.천연 석채(돌가루 안료)나 자연 염료와 같은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는 색감이 맑고 깊으며 건강하고 따뜻한 색파장을 보낸다.이러한 전통의 색은 여성의 포용성을 담기에 적합한 것이다. 나는 한반도의 땅에 오랫동안 뿌리를 틀고 자생하여 온 닥의 유전 형질과 한국 여인의 그것이 아주 잘 일치함을 발견한다.오랫동안 이 땅의 풍토를 가장 잘 극복하며 적응해온 닥나무처럼 한국 여인 또한 강하고 질긴 기질을 지녔다. 종이부인의 배면에는 이러한 닥과 여성의 생태학적인 깊은 교감이 자리 잡고 있다. <종이 부인>은 종이와 만난 여성이며종이를 통해 현현된 존재이다.한반도의 땅에 피고 진, 모든 여성들과의 만남이자하나의 경배와도 같은 제례의식이다. 종이부인을 보며 우리는 한국 역사 속의 무수한 어머니와 딸들을 만나고 그들을 느낀다. 유화부인유화부인은 고구려 신화에 등장하는 건국시조 주몽의 어머니이다. 한국 여성의 원형을 찾기 위하여 이 고대의 여인을 종이부인에 등장시켰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나는 여인의 이미지와 고구려와 깊은 연관을 지닌 일본 나라 현의 고송총고분(다까마츠즈까)벽화의 인물과 의상을 참조하였다. 고송총의 벽화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은 이미 검증을 거친 것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인물을 묘사, 채색하였다. 중앙에 배치한 유화부인의 상의는 고서의 표지를 장식하는 황벽염색의 비단을 사용하였고 치마는 주사와 녹색의 석록을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안료의 표면 위를 염료로 덮었다. 선덕여왕선덕여왕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괘불탱화의 기법을 많이 차용하였다. 사용된 안료도 예전부터 탱화에서 사용되어오던 천연 석채를 주로 사용하였고 금박과 금분도 적극 활용하였다. 통일신라는 어느 시대보다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였고 많은 불교문화를 남기고 있다. 선덕여왕은 그러한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전체적인 모습은 전통의 불교 미술의 양식을 빌어 묘사하였다. 경주 남산의 감실 부처님은 온화하고 자상한 여성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선덕여왕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감실 부처의 얼굴을 빌어 선덕여왕을 그려내었다. 허황옥 허황옥은 불교의 나라 인도에서 한반도로 흘러와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 왕과 결혼하였다. 요즘 표현으로 이민 결혼을 한 셈이다. 그녀는 한국에 올 때 몇 가지 불교유물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부처의 계시로 한국 땅에 불교를 심으러 온 보살이 아닌가 한다. 허황옥의 양쪽으로 지화(한지로 만든 꽃)를 오방색으로 물들이고 그녀의 친정인 인도의 아유타왕국의 상징인 물고기 문양을 넣었다. 화면의 애매랄드 색은 장지 채색으로 그려지고 허황옥의 자세는 일본 경진사 절에 있는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도’의 자태를 빌어왔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관음의 관능적인 몸매를 감물염색을 한 얇은 박지(아주 얇게 만든 한지)로 감싸고 얼굴과 팔 다리 등은 엷은 채색을 가하여 어렴풋하고 투명한 피부색으로 나타냈다. 다문화 가정은 최근에 일어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건국 초부터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명성왕후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이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된 건 아닐까 몇 달을 작업에 매달리는 동안 100년전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은 나를 몹시도 힘들게 했다. 우울함과 무력감속에서 헤매이며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녀와 그 시대를 어떻게 표현해내야 하나.. 엄청난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모든 역사적인 사실과 설명을 배제하고 오로지 색 하나로 그 모든 것을 표현하기로 하였다. 충격, 격동, 혼란, 혁명 등을 상징하는 붉은 색 하나로 그녀의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하였다. 모시를 소목으로 염색을 하고 화면에 부착시킨 후 적색 안료와 콩즙 등을 반복하여 칠하며 색의 지층을 쌓아서 역사의 시공을 그려내었다. 논개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의 싯귀가 떠오른다. 그녀, 창공을 날고 있거나 물속에 가라앉고 있다. 푸른색은 창공이기도 하고 물이기도 하다.논개의 꽃잎같이 펄럭이는 붉은 치마는 임을 향한 사랑과 애국의 정열을 담고 있다. 장지를 붉게 염색한 후 도침(종이를 두들겨서 밀도를 높이는 것)을 하고 그 위에 염료를 발라 깊고 발효된 색을 우려낸다. 심연의 논개는 침잠하지 않고 우리의 가슴속을 영원히 부유할 것이다. 황진이황진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여성이다. 님을 향한 사랑을 시로 표현해낸 그녀를 나는 조선의 규방 문화 혹은 여성미학의 대표적인 산물인 조각보와 자수의 미감을 빌어서 담아보았다.남성에 대한 사랑과 모순사이에서 방황하였던 황진이를 통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온 남성 우월적 미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여성미학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비단의 일종인 갑사를 잘라서 바느질을 하고 화면에 붙인 후 그 위에 채색을 수없이 올리고 닦아내었다. 더하여 자수의 느낌을 물감으로 그려내었다. 화사한 조각보를 강조하기 위해 이 조각 화면의 양쪽으로 염료와 안료의 이중의 색을 만들어 중후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화려한 생과 멀찍이 떨어져 서있는 그녀의 시선은 우리에게 삶의 허무를 전하고 있다. 매창그 시절엔 그녀의 시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한다. 황진이와 함께 또 하나의 예인이었던 그녀를 어떻게 그려보나 고민하던 중 경복궁의 민속 박물관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조선 기생의 초상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머리모양이나 저고리 치마까지 모두 그대로 옮기고 좌우로 역시 금실로 짜여진 공단을 이용해 조각보이미지를 만들었다. 신사임당신사임당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일반적인 견해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다. 단순한 현모양처라기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았던 여성이라는 생각이다. 얼굴도 정면성을 피하고 비정형으로 묘사했다. 조선시대 여인 중에 푸른 쪽물을 들인 남색 치마를 지니지 않은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서양에서는 청바지의 색으로 애용된 이 쪽색은 우리 민족에게도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색이다. 사임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푸른 남색 치마를 입히고 정좌를 시켰다. 좌우의 화면 역시 쪽염색할 때 얻어낸 꽃거품으로 남색을 만들고 그 위에 사임당의 그림 ‘초충도’를 그렸다. 나혜석사랑이란게 그녀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나 묻게 된다. 그것을 위해 잉여의 삶을 모두 던져버린 여인 나혜석! 마지막 행려병자로 숨을 거둘 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역사속의 부인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를 살았고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기고 있어서 사실적인 묘사는 배제하였다. 염색한 실로 얼굴과 머리표현을 하고 퇴색된 검붉은 코사지를 머리에 꽂아주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 의문이다. 유관순유관순 언니는 우리 모두의 언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언니를 생각할 때 마다 3.1운동과 태극기 그리고 만세함성 등 시각 청각이 복합된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마치 큰 바람이 부는 듯 역사의 소용돌이 한 중간에 그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초상화 양쪽으로 태극의 음양과 같이 적색과 청색의 바람을 앉혔다. 감물의 얼룩을 그녀의 배경으로 삼았다. 식민지라는 시대는 우리 역사의 얼룩이 아니던가 허난설헌허난설헌은 난설헌의 초상과 오색의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색은 사람의 손으로 짜여진 천연모시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천연 염색을 한다. 이것을 재래식의 방법으로 만든 삭힌 풀로 부착을 시킨 다음 한천과 반수(아교+백반)로 밑 작업을 한다. 또 염료를 계속 덧바르고 콩댐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렇게 작업의 전 과정의 거의 대부분을 천연재료를 사용하므로 이 모든 재료가 최종 색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색을 결정하는 데는 발색물질 즉 안료와 염료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그 다음으로는 전색제(회화에서 발색물질을 화면에 접착시키는 물질, 아교나 콩즙 등)의 역할을 들 수 있다. 특히 염료는 안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고 투명감을 높여주므로 깊이 있는 색을 만들어 준다. 석채나 분채는 불투명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 염료를 적용시켜 투명감을 부여하고 채도를 높여준다. 여타의 다른 회화장르에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색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담긴 색이다. 수천년을 맑고 푸른 창공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수정 같은 금수(강산)에 멱을 감았던 우리 조상들의 성정 속에는 이런 투명하고 맑은 색에 대한 동경이 있다. 자연으로부터의 색은 인간의 뇌에 직접 작용하여 평안과 휴식을 준다. ‘허난설헌’의 오방색은 고난의 삶을 살았던 허난설헌에게 위로가 되고 그리고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의 안식을 위한 진혼색이다. 백색 ; 모시를 화면에 부착시키고 콩즙을 계속 덧바른다.황색 ; 모시를 황벽으로 염색한다. 화면에 부착시키고 황벽을 계속 덧바른다. 콩즙으로 마무리 한다.적색 ; 모시를 소목으로 염색한다. 화면에 부착시키고 소목을 계속 덧바른다. 콩즙으로 마무리 한다.청색 ; 모시를 쪽으로 염색한다. 화면에 부착시키고 쪽을 계속 덧바른다. 콩즙으로 마무리 한다.흑색 ; 모시를 먹으로 염색한다. 화면에 부착시키고 먹물을 계속 덧바른다. 콩즙으로 마무리 한다. 보자기부인 1고구려 벽화와 고려불화의 채색전통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진다. 상류에서는 초상화나 영정화의 형태로 중하류에서는 민화, 탱화 그리고 규방의 수공예품의 모습으로 미미하나마 그 명맥을 이루어 왔다는 생각이다. 수공예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자기인데 우리의 채색 전통은 노출되지 않은 공간인 규방에서 여성들에 의해 맘껏 꽃을 피웠다. 보자기가 지닌 미적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조각보는 전 세계에서 우리만 지닌 독특한 문화이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독자적인 예술품이다. 보관이나 혹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보자기. 무엇을 싸고 덮고 모아주는 이 보자기에 여성들은 많은 사랑과 꿈과 그리고 눈물을 쏟았으리라. 이 보자기의 미학을 종이부인의 배경으로 깔고 이 다채로운 색의 한 가운데 여성을 앉혀보았다. 색으로 여성을 찬미하다. 보자기 부인 2이미 우리에게서 사라진 고대 문화의 흔적을 보러 나는 자주 현해탄을 건넌다. 곳곳에 남아있는 고대 조상들의 숨결을 발견하고그 진지하고 품격높은 아름다움에 벅차던 순간들! 그곳에 남아있는 전통의 흔적을 발견할 때는 반갑고 고마움을 금할 수 없다. 2003년에도 그러한 것들을 찾아다니던 중 나고야의 시박물관에서 전 세계의 보자기를 접한 적이 있다. 그중 돋보이던 우리 보자기에 대한 감동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한중일 모두 나름의 보자기 문화를 갖고는 있으나 조형적이거나 독창적인 면에서 우리 보자기는 그 독특한 미감으로 단연 돋보였다. 그런데 문화전쟁의 시대를 부르짖으며 우리는 왜 보자기 박물관 하나 없는 것일까? 경제성을 따져도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을 자랑해야 효과가 배가 되는 건 아닌가?특히 조각보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의 보자기라는데..2전시실에서는 시신을 싸는 염풍습을 보여주며 한국이 보자기문화의 대표적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채색화의 정체성을 찾으러 노력해온 나로서는 보자기가 가진 색채 구성적 의미와 여성미학과의 관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벽화로 시작된 우리 채색의 역사는 고려불화에서 완성이 된다. 이후 조선시대가 되어 유교적 분위기로 다소 약세를 보이지만 궁중의 영정화나 민화를 통해 면면이 이어져왔다.회화는 아니지만 역시 채색의 정체를 지닌 미학으로 이 보자기를 들 수 있다. 개인적 감성이 억눌린 시대에 여성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여성의 성정을 펼쳤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