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어릴적부터 많은 여성들에 싸여서 성장해왔다. 어머니, 할머니, 언니, 이모, 고모, 친구들... 그녀들을 거울처럼 바라보며 성장했고 그녀들의 모습은 켜켜이 쌓이는 종이처럼 내 안에 저장되었다. 나 역시 여성으로서 그들의 모습에 동화되어가며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가 아는 여성들은 자신의 내면에 부처를 모시고 살았다. 특히 나의 어머니!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자신을 꺽고 사시던 어머니를 보면서 한편 그 삶을 거부하기도 하고 한편 감동하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시선은 늘 불안하고 애잔하였다. 늘 고통의 이슬이 눈가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것은 쉽게 노출되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 되어가면서 나의 성장이 그것을 깨닫게 했을 뿐이다. 분명 슬프지만 어머니는 슬퍼하지 않았다. 삶이 용납되지 않아도 어머니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해야했기 때문이리라.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 모두 부처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모습을 굳이 말하자면 신라의 반가사유상과 유사하다. 은밀히 사색에 잠겨있으며 투명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반가사유상은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여성안의 부처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 여성/부처를 조선왕조실록의 보수 시 사용되는 가장 얇은 한지인 박지(얇은 닥종이)를 여러 겹 붙여 발라 입체로 떠내었다. 부분 부분을 떠낸 후에 연결하여 입체로 완성하였다. 닥지는 모든 종이 중에 유일하게 성형이 가능한 재료이다. 닥섬유가 장섬유이고 매우 질기면서 부드러운 상극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3D 작업이 가능하다. 부처 안에 전등을 넣어 야간에는 빛을 발하게 하였다. 닥지를 켜켜이 바르면서 감히 반가사유적 반추를 지속하였다. 수많은 여성들-익명 혹은 실존의 여성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못다한 한과 정서를 위무하였다. 사유상의 배경으로 조각보를 배치하여 색상을 통해 바라본 여성성을 유도하였다 사유상의 좌측에는 염색하여 물들인 오색 지화를 깔았다. 이는 극락 혹은 파라다이스를 상징하고 그 우측에는 속세의 낡고 통속한 종이의 물결이 흐른다. 닥종이에 감물을 들이거나 기름을 바르거나 콩댐을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종이에 고통을 가하여 건져진 색들이다. 종이는 나의 손끝에서 흐느끼고 신음하였다. 세상의 어떤 종이보다 질기면서 강인한 닥종이는 이렇게 시련을 통하여 해한解限/해안解安에 이른다. 험한 세상의 다리를 밟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바라보며 관객은 이 슬픔에 동참하리라.